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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우린 알고보면, 시작이 같았다카테고리 없음 2025. 1. 5. 21:34
요리사들이 선 주방은 마치 우리 인생의 축소판 같았다.
흑백요리사가 재밌었던 이유는 어떤 조직에 대입해도 적용 가능한 리더십과 팔로우십의 본질을 생생하게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었기 때문 아닐까? 넷플릭스 시리즈 중 오랜만에 정주행을 한 쇼프로그램이니 만큼 보고난 뒤의 소회를 적어봤다.
1. 시작은 같다
백수저 셰프도 한때는 흑수저 셰프였다.
모든 리더들도 한 때 신입이었다.
흑백요리사를 중간쯤 시청하면서 나는 흑수저들보다 백수저에 주목했다. 사실 흑과 백으로 묘사한 요리 계급 전쟁이긴 하지만, 우리가 스핀오프의 개념으로 모든 셰프를 한 명씩 주목해보면 이런 답을 얻을 수 있다. 현재 정상에 선 백수저 요리사들도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는 출발선에서 시작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 시간, 끊임없이 연습하고 실패하고 연구하고 다지는 고단한 시간들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노력들이 쌓여 지금의 백수저가 되었다.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작은 깨달음으로 시작된 전환점, 에드워드리
에드워드리의 시작도 다르지 않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뉴욕으로 이민을 간 그는 뉴욕대학교에서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이민 2세대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기대하는 바처럼 명문대에 들어가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을 바랬던 부모님의 기대와 다르게 그는 요리사가 되기로 하면 다시 바닥부터 시작했다.
그의 성공이 한순간에 찾아온 것이 아니다. 22세에 취직한 레스토랑에서 그의 인생에 전환점을 맞이한다. 긴 머리에 화장을 하며 다녔던 첫 주방에서 경고를 받기도 했다는 그는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으며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을 지우고, 매일 한 시간 일찍 출근하며 진짜 요리사로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에드워드 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점은 성공의 시작점은 대단한 재능이나 엄청난 기회에서 비롯되진 않는다는 점이다. 그 시작은 늘 사소하다. 아마도 그가 어린 시절 할머니와 주방에서 보낸 시간들이 하나의 토양이 되었을지 모른다. 스승에게 큰 꾸지람을 듣고는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큰 결심을 하고 태도를 바꾼 그의 행동이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이후 세계적인 요리 경연 서바이벌 <아이언 셰프>에서 우승했으며, <컬리너리 지니어스>에 출연해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셰프 고든 램지와 심사위원을 지내는 등 그의 커리어는 빛을 발하게 된다.
작은 불씨로 시작된 꿈, 안성재
흑백요리사 심사위원인 안성재도 같았다. 아니 어쪄면 안성재는 늦깎이였다. 12살 때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생계를 위해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평범한 이민 가정에서 자란 소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 육군으로 4년간 복무하며 이라크 전쟁이 파병되기도 했다던 그는 전역 후에는 자동차 정비사를 꿈꾸며 차량 정비 학교에 등록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어떤 우연이 운명으로 전환되었다. 우연히 길을 지나가던 중 요리 학교 르 꼬르동 블루를 발견하게 된다. 새하얀 요리사 옷을 입은 학생들을 보고 강한 호기심을 느껴 입학 상담을 받았고, 그 계기가 요리사로의 전환점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24세로 요리를 시작하기에는 다소 늦은 나이였다고 한다. 그는 빠르게 배우고 경험하기 위해 요리학교에 입학하자 마자 근처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해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며 남보다 2배 이상의 노력을 해나갔다.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졸업 후 바로 유명 파인 다이닝에 취직하며 요리사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출발점이라는 사실이다. 늦은 나이에 우연히 발견한 길로 꿈을 꾸었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달려왔다. 그의 간절함은 길을 만들었다. 배우고 싶었던 레스토랑에 여러 번 문을 두드렸고, 배움과 실패를 거듭하며 기회를 만들며 성장했다.
무엇보다 그의 성공이 빛이 나는 것은 안성재 셰프 그 자신에 대한 믿음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아주 사소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르는 그의 꿈의 여정은 호기심을 불꽃삼아 열정과 노력을 더해 거대한 불꽃으로 만들었다. 이는 그 누구도 아닌 그가 스스로 만들었다. 우리 모두에게도 그런 불씨가 존재한다고 믿느다. 각자가 가진 불씨를 어떻게 키워나갈지에 대한 의지와 실행력만 있다면 우리 모두 꿈을 이뤄나갈 수 있다.
2. 리더의 온도
인간의 이상적인 체온 36.5도.
리더에게 필요한 온도는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서로 다른 배경의 요리사들이 한 주방에서 호흡하듯이, 팀원들이 가진 각각의 강점을 잘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잠재력을 발견해 최고를 끌어내는 사람이 리더이다. 때론, 구성원들의 성장을 위해 강하게 앞장서는 역할이 필요할 때도 있다. 흑백요리사에서 리더십이 단연 독보였던 셰프는 반박불가인 최현석이었다.
백수저 최현석 셰프 “리더가 흔들리면 그냥 ‘개판’ 나는 거예요.
‘그냥 나 혼자 욕먹으면 되지’ 정도는 리더의 책임감이 아니에요.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 팀의 목적을 달성하게 만드는 것이 진짜 책임감이라고 생각합니다.”
팀대결 그는 가리비를 싹쓸이하며 차가운 전략가의 면모를 보이면서도, 팀을 위해서라면 상대팀에 가서 파를 빌리는 뜨거운 책임감도 지녔다.
"나 혼자 욕먹으면 되지, 정도는 리더의 책임감이 아니에요." 이 말을 들으며 문득 우리가 오해하고 있던 '책임'의 의미를 다시금 깨달았다. 책임지겠다는 건 실패의 대가를 떠안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팀을 어떻게 해서든 성공으로 이끌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최현석은 그걸 정확히 보여줬다. 욕을 먹더라도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게 진정한 책임이라고.
현업에서도 '좋은게 좋은거지'하며 우리는 사람 좋은 동료이자 리더이고만 싶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승부에 함께 뛰어드는 순간 만큼은 함께 승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전부이다. 리더는 그 어떤 순간에도 승리 하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하는 사람인 것이다. 최고의 실력자들도 리더를 신뢰하고 따랐던 이유는 최현식이 보여준 균형 잡힌 리더의 온도 감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차가운 전략가이면서도 뜨거운 동기부여자였고, 냉철한 판단자이면서도 따뜻한 팀리더였다.
팀리더와 팀원들의 품격
그리고 이 승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무엇보다 팀원들의 모습이었다. "팀 리더를 만들었다면 팀 리더를 믿어야 합니다."라는 에드워드 리의 말처럼, 최고의 실력자들도 기꺼이 팀장의 결정을 따랐다. 광어로 가자미 미역국을 만들자는 다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제안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1인분 이상을 해대며 묵묵히 따라주는 그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팔로워십이 무엇인지 보았다. 고수들의 품격을 확인하는 순간들이었다.
글을 마치며 : 결국은 태도
사실, 흑수저와 백수저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요리를 향해 각자가 품은 열정과 배움에 대한 태도이다.
리더는 자신의 흑수저 시절을 기억하며 겸손해야 하고, 흑수저는 끊임없는 열정으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백수저와 흑수저의 만남은 상호 성장의 기회다. 요리사들이 주방에서 서로 배우고 성장하듯, 조직내 구성원들도 각자의 강점을 인정하고 지지할 때 진정한 협업의 시너지가 일어난다. 리더가 먼저 팔로워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태도를 보일 때 조직은 36.5도의 이상적인 인간의 온도를 지킬수 있다.
엄마가 예전에 해주셨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로 서있는 홍학도 사실 알고 보면 치열한 과정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라고. 홍학이 서있는 물 속을 들여다 보면 정말 한다리로 버티고 서있다. 진리다. 그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흑수저도 백수저도. 태도가 전부다.
마지막으로, 흑백요리사 2편도 정말 기대된다.